[헤르메스, 욕망의 정치] 스팀잇 딜레마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점 -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It's the politics,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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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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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Busy8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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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글에선 지금까지 다루었던 주제를 다른 경로로 접근해보려고 해. 잠깐 여담이지만 요즘 헤르메스가 점점 kr-gazua에 중독되어가는 느낌이야. 경어체로 글을 쓰면 왠지 불편한 건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얘들아~ 성우야~가 아니라 형들~ 언니들~ 성우형~ 유빈언니~ 이렇게 부른다니까. ㅋㅋㅋ

  2. 그건 그렇고, 이 형 갑자기 왠 정치 타령이지? 그리고 뭔가 착각한 거 아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잖아. 맞아. 1992년 깡시골인 아칸소의 애송이 주지사에 불과했던 클린턴을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은 바로 그 슬로건, 전설적인 선거 전략가 제임스 카빌의 걸작이지. 선거 슬로건에 그친 것만도 아니지. 이후 클린턴이 르윈스키 성추문이라는 글로벌~ 망신살을 극복하고 8년간 무난히(?)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기간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긴 호황기를 구가했던 덕분이니까... 여기에 자극 받아, 같은 해 집권한 우리 YS 각하께서도 집권기 내내 '경제를 살립시다'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쳐댔지.

  3. 헤르메스 형, 그러니까... 중요한 건 경제(스팀 떡상 가즈아~)인데 왜 정치가 문제냐고요? 흠... 그럼 이렇게 설명해 볼게. 학문적 개념은 학자들에 따라 여러가지로 정의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형들이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과서의 정의를 따르려고... 사회 교과서에 따르면 경제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및 그와 직접 관련되는 질서와 행위의 총체'라고 해. 반면 정치는 '사회적 희소가치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활동'이지. 그럼 생각해보자구. 경제가 중요해? 정치가 중요해?

  4. 경제가 중요한 건, 그것이 구성원의 먹고사니즘 즉 생존, 생활, 번영과 직결되기 때문이야. 그런데 정치는? 갈등 조정?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조정할 갈등이 없거나 있더라도 저절로 해결된다면 정치 따위 필요 없잖아?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거지?

  5. 이유는 모든 플랫폼은 '플랫'하지 않기 때문이야. 지금까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플랫폼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플랫한 적이 없어. 플랫하지 않는 플랫폼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그 갈등을 적절히 조정하지 않으면 플랫폼은 번영은커녕 존속할 수 없지. 자본주의라는 플랫폼의 시작을 보자구. 영국은 봉건 귀족들이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농노들을 쫓아내고 자본가로 변신했고, 프랑스는 부르주아지들이 부르봉 왕조와 결탁해서 경제적 지배력을 장악했지. 미국에서는 어느 자본가가 정부에 로비를 벌여 북군의 소총을 중고로 싸게 사들였다가 전황이 격화되자 정부에 되팔아 여섯 배가 넘는 차액을 남기기도 했어. 이 분은 이후 이에 버금가는 여러 협잡 행각을 거쳐 전대미문의 초거대 재벌이 되었고... 이 분의 이름은? J.P. 모건. 맞아. 여러분이 아는 바로 그 J.P. 모건이야.

  6. 일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국가를 가리켜 '세금을 명목으로 삥을 뜯는 강도'라고 하는데, 이렇듯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자본가들이 오히려 '국가에게서 세금을 강탈한 강도'인 듯해. J.P. 모건 같은 초거대 재벌이 등장하던 시기를 강도 귀족(robber baron)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7. 스팀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구. 스팀 플랫폼이 플랫하지 않다는 건 두 말 할 나위가 없을 거야. ICO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플랫폼이 플랫할 수는 없지. 그래서도 안되고. 이 말은 곧 다른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갈등(그리고 그것의 적절한 조정)을 숙명으로 떠안고 있다는 거야.

  8. 앞의 글에서 말한 @freedom의 예로 돌아가보자구.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자면, 내가 이 계정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이런 계정의 존재에 대해 감정적으로 분개해서 여러분들에게 표출하거나 특정한 입장을 선전하려는 데 있지 않아. 그저 '극적dramatic'이어서 지켜보기에 흥미롭고 '극단적extreme'이어서 분석 대상으로서 효과적이기 때문이지.

  9. 여러분들은 어땠어? 나는 이 계정을 들여다 보면서 J. P. 모건이 떠오르기도 했어. 모건의 초기 협잡 행각을 생각해봐. 협잡이라니... 너무 지나치다구? 오해하지마. 형은 지금 윤리적 판단 / 가치 진술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논리적 판단 / 사실 진술을 하고 있는 거라니까. 대단히 냉정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10. 보자구. '모든 사람이 컨텐츠를 창조하고 큐레이팅해서 대가를 지불받는 소셜 미디어a social media platform where everyone gets paid for creating and curating content.' 지금도 스팀잇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 그런데 어때? @freedom은 단 하나의 컨텐츠도 창조하지 않고 당연히 큐레이팅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대가를 지불 받고 있어. '모든 사람' 가운데 @freedom만은 예외인 거야. 그런데 그 '거대한 예외'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니까. 가장 극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인 건 맞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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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나아가, 널리 알려진대로 이 계정이 스팀재단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때? 이 계정은 사실상 스팀 플랫폼의 중앙은행 역할을 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실제로 막대한 양의 스파 임대와 스팀-스달 거래를 통해 그렇게 하고 있다구. 경제 공황기에 J.P 모건이 했던 것처럼 말이야. 탈중앙화 블록체인이라구? 만약 이 계정이 스팀재단과 관련이 있다면, 이건 정의상 빼박캔트(^^) confidence game = 협잡이야. 역사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즉 가치 판단과 상관없이) 우리는 지금 스팀의 '강도 귀족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거라고.^^

  12. 누군가는 정치를 '내전의 평화적 제도화'라고 표현했어. 이에 따르면 사실상 제도화된 정치 시스템이 부재한 스팀 플랫폼 안에서 고래들끼리 내전이 벌어지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인 거지. 그런데 고래들은 가진 게 많아서 그렇다치고 플랑크톤이나 피라미는 어때? 사실 이들, 특히 플랑크톤들은 내전을 벌일 힘도 동기도 없어. 현실의 국가에는 귀속적 강제력을 갖지만 스팀은 그렇지 않거든. 소유한 게 없으니 떠나면 그만이고, 그 조차 귀찮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영원히 잠든 휴면 계정이 되는 거지. 그렇게 스팀의 생명력은 꺼져가는 거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컨텐츠 창조와 큐레이팅은 허울 뿐, 셀봇과 펀딩만 난무하는 죽음의 바다, 거대한 신용 사기 공동체가 되는 거야.

  13. 그래서 헤르메스, 네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정치가 문제라는 건, 결국 우리 모두 '정치'를 해야한다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놓아야 한다고 선전하는 거잖아.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는 그게 아냐. 그보다 내 의도는 우리는 언제나 /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고 싶은 거야.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적 희소가치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활동'이라는 '정치'의 정의로 돌아가보자구.

  14. 이 정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어. '합리적 조정'이라는 말에만 집중하면 돼. '사회적 희소가치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말에는 따로 논의할 게 별로 없으니까. 개인적 가치라면 배분할 이유가 없고 희소하지 않은데 갈등이 일어날 일도 없잖냐고.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거지. 게다가 '모든 플랫폼이 플랫하지 않다'는 건 우리가 이미 확인한 바 아니겠어? 갈등은 우리의 숙명, 증명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 이미 우리와 함께해.^^ 그러니까 다 접어놓고, '합리적 조정'이라는 표현만 들여다 보자구. 이를 해석하는 입장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해.

  15. 우선 'rational'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rational'이라는 단어가 'ratio(비比)'라는 어원에서 나온 것처럼, 갈등 조정이 '양적 공정성', '수학적 비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갈등 조정에서 인위적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려 할 거야. 대체로 시장 원리에 따른 자원 배분이 객관적으로 가장 공정하고 결과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따라서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정치는 '방임의 정치', '최소한의 정치'일 거야. 앞서 말한 이사야 벌린이 대표적이지.

  16. 다른 한편으로 '합리적인'을 'reasonable'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리에 맞는', '합당한' 등과 동의어로 보는 사람들 말야.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이 대표적인데 이런 사람들은 수학적 비례보다는 사회적 합의, 원칙 또는 상식을 중시할 거야. 그 합의는 관습이나 자연법에 따른 묵시적 합의일 수도 있고 법률 같은 실정법적 절차에 따른 명시적 합의일 수도 있어.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시장 원리에 따른 자원 배분이 양적으로는 공정하나 질적으로는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각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17. 정리하자면 여뷰징이고 뭐고 객관적으로 정의하기도 힘들고, 규제하기도 힘들고, 그러한 규제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정당한지 알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15항 식의 정치를 언제나/이미 하고 있는 거야. 앞의 글에서 다룬 '자유'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해 각자가 판단할 문제라 생각하고 아예 무관심한 측은 소극적 자유를 소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거고, 개인의 기본권에 속하는 문제라 생각하고 불개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측은 소극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

  18. 반면, reasonable하지 않는 행위, 다시 말해 합당하지 않은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해야한다는 입장도 있겠지.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합의 파기를 묵인하는 데 반대하거나 도덕 감정 상 허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 백서 개정을 통한 집단적 방식으로든, 다운보팅 등을 통한 개별적 방식으로든 합의 파기 행위에 대해서는 강제적으로 규제해야한다는 측은 적극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측이라면, 도덕적 비난이나 캠페인 등을 통해 자발적 절제를 유도하려는 입장은 적극적 자유를 소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측이라 말할 수도 있겠어.

  19. 내가 생각하는 '비지배 자유에 기초한 욕망의 공화정-스팀 리퍼블릭'의 전망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이렇게 자유와 정치의 문제를 두 편의 글에 걸처 자세히 다룬 이유는 다음 두 가지야.

  20. 우선은, 내 글이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델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지. 다양한 생각과 입장에 대해 개념적 정리가 이루어지고 정리된 구도 안에서 내 생각을 포함한 다양한 형들의 생각이 생산적으로 소통되고 논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개념 정리 없이 혼란스레 논의가 진행되다보면 의미없고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비화되기 쉽거든. 나, 그러는 게 싫어서 페이스북에서 건너온 난민이라는 거 아는 형들은 다 알지? ㅋ

  21. 다음은, 이어질 글에서도 밝히겠지만 나의 입장 또한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앞으로 전개될 상황, 그리고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나는 지금까지 말한 그리고 앞으로 말한 여러가지 정치적 입장 중 하나를 취하거나 둘 이상을 조합하거나 입장을 그 때그때 바꿀 수 있어. 이는 내가 하나의 입장과 주의 주장에 얽매이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이지만(누군 안그런가? ㅋ), 그보다는 주체보다 행위, 행위보다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해.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글이 뜻하지 않게 길어졌어. 개인적으로 기말 평가 기간이라 글 쓸 시간 내기도 힘들고, 지난 주말 시합에서 데드볼을 맞아서 오른 팔꿈치에 보라색 멍을 달고 있는 고로 나름 악전고투 끝에 쓴 글이야~ 일부러 길게 쓴게 아니라구~ 나도 힘들었다구~ 생색~ 엄살~~~~ㅋㅋㅋㅋ

    사전 정지 작업(?)이 끝난 만큼, 이제부터는 원래 생각대로 좀더 부담없고 간결하게 쓸 수 있을 거 같아. 나누고 싶은 주제들 댓글로 틈틈이 이야기 나누자구. 그럼 또 만나~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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