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욕망의 정치] 스팀잇에서 형들은 얼마나 자유롭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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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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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Busy4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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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이런 식의 구분은 이사야 벌린이 대표적이지. 러시아 태생의 영국 정치철학자야. 소극적 자유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야. 간섭받지 않을 자유, 내 맘대로 할 자유지. 반면 적극적 자유는 '~를 향한 자유(freedom for)'야. 대상에 어떤 작용을 가할 자유, 개입할 자유, 참여할 자유라고도 할 수 있겠어.

  2. 스팀잇에는 @freedom이라는 계정이 있어. 아이디 자체가 '자유'지.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활동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어.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큐레이션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게시글 없음, 팔로우 없음, 명성도 25. 그런데 어라? 팔로어는 2000명이 넘는군. 지갑을 클릭해 보니... 와우. 엄청난 숫자의 향연! 780만 스팀파워에 80만 스팀달러, 5600 스팀, 추정 자산가치 1870만 달러. 어마어마하군... 스스로 '자유'라 부를만 해. 이건 그냥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야. 적어도 스팀잇에선...

  3. 내가 본 ' freedom'의 거래 내역엔 전치사 'to'가 없고 'from'만 있어. 끝없이 이어지는 거래 기록은 하나같이 'Transfer OOOO SBD from OOOO.' 꼴이야. 또다른 의미의 'freedom from'인 셈. 벌린이 말한 '~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에서 기인하는 자유'. 구체적으로는 'freedom from Steem Dollar / 스팀달러에서 기인하는 자유'인 거야. 이 친구(개인인지 기관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디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군.

  4. 이 친구가 글 한 줄 쓰지 않고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스팀파워를 임대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야. 그런데 거래내역를 봐. 그에게 정기적으로 스팀이나 스팀 달러를 송금하고 있는 아이디를 보면 거의 대부분 흔히 '보팅봇'이라 불리는 비드봇 운영자들임을 알 수 있어. 자신의 컨텐츠를 알리길 원하는 스티미언들에게 보팅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자들이지.

  5. 거래내역에 to가 없고 from만 있다는 건 이 친구가 거대한 저수지 역할을 한다는 뜻이겠지? 스팀 생태계 최하단의 플랭크톤이나 피라미들에게서 스팀 달러를 빨아들여 모아두는 저수지 말야. 이 저수지가 으스스한 것은 그 크기와 깊이 뿐만이 아니야. 정말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가진 권력이지. 벌린 식으로 말하자면 '~를 향한 자유'라고 할 수 있겠어. 스팀이든 스달이든 마음먹으면 언제든 시세를 조종할 수 있고 엄청난 보팅파워를 동원해 공동체 내의 여론까지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자유가 정체를 알 수 없고, 따라서 행위의 의도 또한 가늠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다구...

  6. 생각해 봐. 우리가 오늘은 무슨 글을 쓸지, 보팅을 누구에게 얼마나 할지, 거래소 그래프를 들여다 보며 스팀을 살지, 스달을 팔지, 파워업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 따위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말이야. 어쩌면 그것은 글자 그대로 광합성을 위해 더 많은 햇볕과 유기물을 찾아 부유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자유, 더 많은 식물성 플랑크톤을 흡입하려는 동물성 플랑크톤의 자유에 불과할지도 몰라.

  7. 이사야 벌린은 적극적 자유가 스탈린 식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거라고 말했어. 그의 태생에 비추어 일면 이해할 만 하지. 하지만 J. S. 밀이 이야기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한, 무제한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스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알 수 있 듯, 적극적 자유 없는 개개인의 소극적 자유는 역설적으로 '적극적 자유의 독점'으로 귀결될 뿐이야. 스팀잇에서 한 때 (지금도 그러하지만^^) 오스트리아 학파,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열광이 고래들의 보팅에 의해 펌핑된 것도 그 때문일지도...

  8. 형들에게 묻고 싶어. 스팀잇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롭다고 생각해? 특히 국가의 부당한 개입을 피해서 스팀잇으로 찾아든 분들이 있다면, 그래서 소극적 자유의 절대성을 설파하는 이야기들에 (아직도!) 열광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묻고 싶어. 국가가 휘두르던 권력을 극소수 개인 또는 집단이 휘두르는 건 정당화될 수 있나? 그런 상황에서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는' 노예의 자유와 뭐가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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