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정치] 거듭남의 기회, 번성의 조건 - 스팀 커뮤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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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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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Busy8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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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그리고 로크
  1.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야구 이야기부터.^^ 지난 글에서 모범적인 경기 끝에 5대4로 석패했다고 소개했던 그 팀과의 리턴 매치가 오늘 아침에 있었어. 결과는 12대 8 승리. 1회 초 공격에서 대거 7점을 얻은 이후, 고비마다 착실히 점수를 쌓은 덕분에 비교적 낙승했어. 어제 상대팀 감독이 우리 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경기에서 있었던 불미스런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는 훈훈한 뒷이야기도 있었지. (지난 글: 야구 이야기 그리고 망조가 든 스팀잇을 떠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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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기 중에 덕아웃에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우리 팀에는 심판 자격증을 따고 사회인 야구 심판을 전업으로 하는 후배가 있어. 야구가 좋아서 사회인 야구의 길로 들어섰다가 '덕업일치'의 경지에 오른 친구지. 그런데 이 친구가 지난 주에 심판을 보다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더군. 무사 만루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1루 주자가 2루로 도루를 하더라는 거야. 2루에 주자가 없다고 착각을 한 거지. 그런데 재밌는 건 공격 팀의 주자들이 당황한 것은 물론, 수비를 하던 내야수들도 당황해서 심판에게 SOS 신호를 보내더라는 거. "심판님 어떡해요? 베이스 밟으면 돼요? 아니면 태그 해야 돼?" 당연히 주자를 태그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초보 팀이었는지 당황해서였는지 잘못된 대상에게 잘못된 질문을 던진 거지. 그래서 우리의 젊은 심판은 어떡했냐고? 당연히 가만히 있었지. 어떤 일이 있어서 심판이 경기에 개입해서는 안되니까...

  3. 요즘 사법농단 관련 뉴스를 보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라는 사람들이 이 젊은 사회인 야구 심판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심판이 특정 팀의 감독 노릇을 하거나 승부를 조작하거나 판정을 놓고 거래하는 거나 다름 없는 일을 벌이고도 뻔뻔스럽게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눙치고 있는 꼴이라니, 그리고 그 뻔뻔스런 범죄행위의 동기가 고작 '상고법원 신설'이라는 제 밥그릇 키우기였다니 말이야. (관련 글: '정의의 화신'이어야 할 14인... 님들의 침묵에 침을 뱉는다)

  4. 이쯤에서 로크 이야기를 해 볼까 해. 6개월 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존 로크는 인간의 본성은 알 수 없다고 했어. 나는 그가 옳았다고 봐. 알 수 없는 건 알 수 없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지. 그때도 말했듯이 존 로크가 인간 본성은 백지(tabula rasa)와 같다고 했다는 주장은 (교과서에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이 아냐. 동료였던 라이프니츠가 그의 주장을 빗대서 한 말일 뿐... 어쨌거나,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로크는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렸고 나는 이 지극히 평범하면서 일면 비겁해 보이는 결론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위대한 결과(근대 민주주의)를 낳은 가장 위대한 결론이었다고 생각해.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때 글을 일부 옮겨 볼게.


그런데 로크 선생님, 님 말이 맞다면 말이죵. 국가는 왜 생긴 겁니꽈아아아~!

“왜냐구? 불편하니까.”

“네? 뭐라구요?”

“불편하니까~~ 생각해보라구. 헤르메스 씨가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해봐. 두 팀이 경기장에 모였어. 야구하려고 모였지? 그게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이야. 우리는 야구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겨! 근데 말야. 시합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시합을 즐기는 고매한 분들도 계시지만, 승부에 집착하는 놈, 쓸데없이 흥분하는 놈, 오버하는 놈, 대~충 하는 놈 별별 놈들이 다 있지 않아?”

“흠, 그건 그렇긴 한데...”

“그니까~ 그게 피곤한 거라고, 괜히 스트라익인데 볼이라고 우기고, 지가 잘못해 놓고 방망이 집어던지고...”

“에이, 로크 선생님도... 언제적 이야기를... 요즘 사회인 야구 그렇게 안 해요. 그러다 싸움 나게? 돈 좀 들어도 심판 불러다 놓고 한다구요.”

“그치? 그 심판이 국가야...”

“으응?!!”"

from 그대는 국가를 아는가? - ‘어용지식인’ 유시민을 동정하다


소극적 자유의 역설 그리고 호혜적 상황
  1. 알다시피 스팀잇은 위임지분증명 방식, 다시 말해 선출된 증인에 의해 가동되는 플랫폼이야.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따지면 대의제 즉 로크의 방식에 충실한 시스템이지. 알다시피 인간은 상황에 따라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으니, 자유 의사에 따른 행위는 폭넓게 보장하되 특정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 개인의 이익이나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위협할 경우를 대비해 대표를 선출하여 이들에게 심판 역할(=국가권력)을 맡기자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었어.
  2. 여기까지는 논리적으로 매우 훌륭해. 그런데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거... 무엇보다 자유의사에 따른 개인들의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 달리 표현하면 심판 역할을 맡은 대표자들이 개인들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냐를 두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거야. 로크의 단순하지만 명쾌한 결론이 가진 치명적인 결점이기도 하지.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욕망의 정치" 시리즈에서 '자유(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 비지배 자유)'를 키워드로 삼은 이유이기도 해.
  3. 앞의 글에서 든 사례로 돌아가 보자구. 어떤 이유 때문인지 댓글 리스트에서 사라져버렸지만 어떤 분이 매우 도발적인 문체로 사회인 야구에 시간 제한 규정이 있다면 '시간 끌기' 작전 또한 허용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쓴 것을 봤어. 그런 주장은 논리적으로 그럴 듯해 보여. 사람마다 야구를 하는 목적이 다른 만큼, 어떤 행위를 하든 정해진 규정만 지키면 된다는 주장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신장시키는 것처럼 보이지. 그런데 말야. 과연 그럴까?
  4.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 1회 공격에서 1점을 앞선 팀이 남은 기나긴 시간 동안 야구판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말야. 방법은 많아. 공격측이라면 타자가 덕아웃에서 타석까지 30분이 걸리든 한 시간이든 느릿느릿 걸어갈 수도 있고, 수비측이라면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지 않고 견제구를 계속 던진다든가, 야수들끼리 내외야로 공을 빙빙 돌릴 수도 있지. 이런 장면,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지 않아? ㅋㅋ
  5.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시간,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견제구의 수, 플레이볼 선언 후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질 때까지 지켜야할 시간 등등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해당하는 규정을 일일이 만들어야 할 거야. 규정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규정을 만들어 지게 되고 결국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이 점점 더 제한되는 거지. (나는 이를 '소극적 자유의 역설'이라 부르고 싶어.)
  6. 반복하긴 싫지만 '어뷰징' 논란 혹은 딜레마도 본질적으로 이런 거 아니겠어? 그럼 해법은? 로크의 생각을 존중하되, 로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로크는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없다고 했지? 그냥 알 수 없다고 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했어. 바로 그거야. 핵심은 '상황'이야. 자신의 이기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강변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각기 원하는 바, 나름의 욕망을 추구하면서도 타자의 욕망과 어우러져 더 큰 만족을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을 구현해내면 되는 거야.
생명의 조건, 커뮤니티스
  1. 5개월 전에 쓴 글(잊었어? 여긴 바다야. 그리고 바다는 결코 정의롭지 않아.)에서 나는 스팀잇을 '절멸과 번성의 사이클이 지배하는 바다'에 비유했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스팀잇은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호수'였어. 우리는 각자의 목적과 재능과 능력(재력?)을 갖고 자발적으로 뛰어든 플랑크톤, 피라미, 고래들이었던 셈이고... 이곳은 아직 우리에게 바위도, 모래톱도, 해구도, 해저 산맥도, 바람도, 해류도 존재하지 않는 인공 호수... 아니 '거대한 욕조'에 가까울 수 있을 듯해.
  2. 욕조든 호수든 바다든,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어. 고인 물이 썩지 않으려면 바위와 모래톱과 해저의 산맥과 해구와 바람과 해류가 필요하지. 그런 것들이 존재할 때 다양한 생명이 깃들이고 그 생명들이 서로 어우러져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거야. 그렇다면 지금 스팀잇의 상황, 아니 스팀잇의 미래는 어떨까? 우리는 이미 거대한 인공호수가 맞이할 수 밖에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절멸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아직은 아니야.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어.
  3. 나는 그 기회가 '커뮤니티스'에 있다고 봐. 두어 달 전 욕망의 공화정 - 스팀잇 리퍼블릭을 꿈꾸며를 기점으로 '욕망의 정치'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현실적인 계기도 거기에 있어. 각자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과 서로 만나 더 큰 욕망과 더 큰 만족을 창출하는 호혜적 상황... 다양한 욕망,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고 번성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될 기반, 스팀잇이 거대한 욕조, 인공호수가 아니라 진정한 바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커뮤니티스'에 있다고 본 거지. 그것은 비유하자면 다양한 생명이 깃들일 최소한의 조건, 다시 말해 '바위와 모래톱과 해저 산맥과 해구와 바람과 해류'인 셈이야.
  4. 하지만 그것은 아직 '최소한의 조건'일 뿐, 그것이 실현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생명의 번성'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야. 지금 당장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겠지. 그리고 '최소한의 조건'이 실현되었을 때, 바위틈이든, 모래톱이든, 해저 산맥이든, 해구든 각자가 원하는 욕망의 터전에서 다른 욕망과 어떻게 해후하고, 교섭하고, 상호작용해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실현해 나갈지를 차근히 구상하고 준비해가야 할 테지.
  5.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할 듯해. 이 글 다음엔 흐름상 '커뮤니티스' 이후의 스팀잇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뒤따르게 될 거 같아. 다음 주면 개학이라, 얼마나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을지 살짝 걱정도 되지만 최선을 다해볼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많은 의견 부탁할게~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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